오마이뉴스 2008.04.03 08:47

하루 종일 안 보이던 무선 전화기를 냉장고에서 찾았다는 건망증 이야기는 이미 낡은 버전.

이제는 무선 전화기를 랩으로 꽁꽁 싸서 냉동실에 넣기도 한단다. 중년기와 노년기 건망증에 대해 앞다퉈 내놓다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다가 나 치매 걸리는 거 아냐?"

흔히 건망증은 부분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이고, 치매는 전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 반찬 뭐 먹었지?' 생각이 잘 안 나는 것은 건망증, 아침 잘 드시고 나서도 '며느리가 밥도 안 주고 이 늙은이 굶겼다!고 화내는 것은 치매, 뭐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어느날 알게 된 아내의 치매

▲ 포스터 <어위이 프롬 허>

ⓒ 마스 엔터테인먼트 어웨이 프롬 허

결혼 생활 44년이 된 남편 '그랜트'와 아내 '피오나'의 일상은 잔잔하며 고즈넉하다. 부부가 같이 스키를 타고,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노년의 삶으로 보인다. 그런데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피오나는 쓰고 난 프라이팬을 냉동실에 집어 넣는다. 피오나가 없을 때 프라이팬을 슬그머니 꺼내놓는 그랜트.

피오나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다. 단어와 지금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바래는 경험을 빈번하게 하며 피오나는 자신의 증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요양원 입소를 주장한다.

차마 아내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는 그랜트는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결국 요양원에 입소한 피오나. 아내가 적응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는 그랜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오나는 요양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오브리'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다른 남자를 삶의 한 가운데 놓은 아내를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그랜트.

급기야 그랜트는 오브리의 아내를 찾아가 오브리의 퇴소를 부탁하고, 오브리가 안 보이자 상심한 피오나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그랜트는 아내를 보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또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의아했던 것은 피오나가 서둘러 요양원에 갈 상황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외따로 떨어진 집에서 부부가 단출하게 살고 있어서 얼마든지 남편의 돌봄이 가능했다. 길을 잃고 헤맬까봐 두려워하는 피오나를 그랜트가 옆에서 얼마든지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피오나가 대소변을 못 가리는 것도 아니고, 불을 잘못 다뤄서 위험에 처할만한 상황도 아닌데 서둘러 입소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시설 입소만이 능사가 아닌데 말이다.

자신이 살아온 익숙한 환경에 최대한 머물면서 병의 진전을 막는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며, 피오나의 상태를 덜 악화시켰을 것만 같아 보는 내내 편치 않았다.

거기다가 오브리의 아내와 그랜트의 만남이 그려내는 모호함에 이르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까지 희미해져 버리고 만다. 부부가 나란히 타고 지나가는 스키의 자국이 상징하는 인생길이라는 상징의 진부함과 함께.

치매 영화일 뿐 아니라, 부부가 노년에 겪는 어려움과 사랑을 담고 있다고 하기에 여러 차례 약속을 확인하며 땡 퇴근하고 달려온 남편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당부했다.

"내가 식구들 못 알아보고, 음식도 내 힘으로 못 먹고, 대소변도 못 가리면 돌보느라고 애쓰지 말고 전문시설에 입소시켜! 가슴 아파 할 것거 없어."

돌아온 남편의 대답.

"마누라보다 내가 먼저 그렇게 될 거 같은데. 요즘 내 깜빡증이 장난이 아니거든."

노년의 삶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우리들 살아낸 삶의 결과로 받아 안게 되는 것. 몸과 마음의 쇠약함과 관계의 어려움, 일상 유지의 막막함이 겹쳐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계획이나 소망대로 되지 않는 인생임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우리는 허약한 다리로 노년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요양원에, 아니 그보다 더 먼 곳으로 보내게 될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어웨이 프롬 허 Away from Her, 2006 캐나다>(감독 사라 폴리 / 출연 줄리 크리스티, 고든 핀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