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2008. 04.18. 11:06

/ 김성구 부경대 식품생명공학부 교수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모 TV방송국에서 하는 '도전 1000곡'이라는 노래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누가 가사없이 틀리지않고 노래하는가를 가려서 우승자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얼마 전에는 왕중왕을 뽑는데 가수 마야와 박상민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모든 노래가사를 기억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20년 전부터 노래방이 성행하면서 노래가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져서 지금은 기계가 없으면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또 휴대폰이 보급되고 전화기에 번호를 몇백개씩 저장하면서부터 전화번호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져 전화기를 분실한 뒤 전화번호를 몰라 당황하던 기억이 난다. 이와 같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억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일상생활이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게 된다.

인간은 기억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기억을 잊어버리는 망각을 하면서 삶을 영위해간다. 아픈 기억이나 생각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옅어지고 다시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기억은 단순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전화번호를 듣고 어디에다 적고는 금방 잊어버리는 기억은 단순기억이고, 이 번호를 몇 번 반복해서 외우는 과정을 거쳐서 암기를 하면 장기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이다.

나이 50세가 넘어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늘어가면서 일상생활에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둘씩 증가한다. 뇌에 더 이상 기억을 채워넣을 하드웨어 공간이 없어져서인지는 모르지만 아침마다 차를 찾으려고 지하주차장과 지상주차장을 헤매기 일쑤고, 머리위에 안경을 얹어놓고 안경 찾기 일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다가 막상 사람을 보면 부탁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당혹케하는 건망증으로 힘들어한다.

며칠 전에는 전화 한통을 받고 건망증이 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하고 힘들어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갈 즈음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에서 상대방이 나를 확인하고는 바로 본인이 누군데 어제 모임에 왜 안 나왔느냐고 한다. 잘못 온 전화거니 생각해서 전화 잘못 거셨다고 하니 새삼 내 이름을 부르며 맞다고 한다. 순간 나도 당황해서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고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상대방이 "됐다"면서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제 갈 때 까지 간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 다시 한 번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나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잘 안다고 한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더니 교환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찾는 분의 이름이 김성구냐고 하였더니 그때부터 상대쪽에서 머뭇거린다. 우리 학교에 김성규, 김성구, 김성부가 있는데 그중에 누구냐고 하니 내가 아닌 다른 김 선생이라고 한다. 잠시 동안 자괴감에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건망증과 기억력 감퇴로 우리나이 또래들은 힘들어 한다. 그러나 이런 건망증은 적절한 기록이나 정리정돈으로 나아질 것이라 한다.

정작 힘든 기억상실증은 치매 혹은 노망이라고 하는 알츠하이머병이다. 노인들에게 일어나는 점진적 치매로서 기억상실이 건망증을 넘어서 가족도 못 알아볼 만큼 기억이 손상되는 병증이다. 심하면 인지인식능력이 떨어져 의사소통도 못하게 되는 심각한 노인성질환이다.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80세 가까이 되면서 점점 더 치매환자의 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단층촬영술로 진단이 가능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발병기작을 모른다. 이 병은 유전적 요소와 스트레스 혹은 만성염증이 관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예방법이나 확실한 치료법은 없다.

며칠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조원의 예산으로 7월부터 실시하는 치매환자를 위한 노인장기요양 보험서비스를 이달 15일부터 접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자의 의료보험비 부담은 늘겠지만 기억의 질환에 걸린 노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부담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인구 수가 증가하는 부산에서도 요양이나 실버산업을 부산 특화산업으로 육성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