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희의 정신건강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등의 영향인지 치매 걱정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물론 치매가 주로 나타나는 노인 인구 비중이 커졌고, 정신 건강을 비롯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이유다. 이들 가운데 많은 경우 건망증과 치매를 잘 구별하지 못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보다 건망증이 더 자주 심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치매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단순한 노화는 치매의 원인이 아니며 나이가 든다고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치매는 노화 현상과는 달리 우리 뇌에 병이 생겨 기억력 장애와 더불어 여러 가지 이상행동을 보이게 한다. 사회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상당한 지장을 받는다.

이와는 달리 건망증은 기억력에 있어서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고 주로 사소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조금만 힌트를 주면 금방 잊어버린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본 영화 제목이나 얼마 전에 만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다가도 당시 상황을 몇 가지 말해 주면 금방 기억이 살아난다. 또 아는 사람의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억나거나 또 며칠 지난 뒤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본인 스스로도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다. 이런 건망증은 나이가 젊은 사람에서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거나 한 가지 일에 몰두할 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치매의 경우 사소한 기억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억도 눈에 띄게 사라진다. 사건의 세세한 부분보다는 사건 자체를 잊어버리고, 아무리 힌트를 줘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한다. 치매가 나타나면 자신의 기억장애 현상에 대해 순순히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증상에 대해 무관심한 듯 보이거나,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능청을 부리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때는 의사의 진찰과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치매의 원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이며 그밖에도 다양한 원인에 의한 치매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을 해 내지 못하다가 점차 기억장애가 심해지고 이상행동을 보인다. 말기에는 팔다리의 근육이 굳거나,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요실금과 같은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치매 원인에 따라서 일부는 완치가 되는 경우도 있고,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치매의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울증과 같은 노인의 정서적 상태가 치매의 위험인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이 있는 노인 환자는 일반 노인에 견줘 치매의 발생률이 2~3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치매 증상도 더욱 심한 특징이 있다.

최근 신경과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경험과 기억이라는 자극을 받으면 지속적으로 발달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치매의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두뇌를 활성화시켜주는 것이 좋다. 몸을 움직이는 신체적인 운동과 함께 머리를 쓰는 일과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도움이 된다.

허찬희 영덕제일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