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6 00:52

[중앙일보] ‘앞쪽형 인간 운동’ 펼치는 나덕렬 성균관대 의대 교수

만성 음주로 뇌세포 파괴돼도 명상·독서 훈련하면 회복 가능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52) 교수의 연구실. 들어서자마자 조그만 꾸러미가 눈에 띈다. 투명한 포장지에 살포시 싸여있는 건, 다름 아닌 화학 처리를 거친 인간의 뇌다. 이를 두 손으로 집어들고 “크기와 상태를 볼 때 성인 여성의 뇌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매일 뇌를 만지는 남자’인가 보다.

나덕렬 교수가 삼성서울병원 연구실에서 화학 처리한 뇌를 들여다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치매와 인지신경학 전문의인 그는 최근 『앞쪽형 인간』(허원미디어)이란 책을 펴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앞쪽뇌 관련 서적으로는 처음일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앞쪽형 인간 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해부학에서 전두엽이라 부르는 ‘앞쪽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운동이다.

“앞쪽뇌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각종 자극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뒤쪽뇌와는 달리, 앞쪽뇌는 동기를 부여하고, 충동을 억제하며 계획을 세우게 하는 기능을 하지요. 기업으로 치면 최고경영자(CEO)와 같습니다. 그 기능이 없으면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요.”

그는 자신이 ‘앞쪽형 인간’의 전형으로 여기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가수 박진영씨를 인터뷰해 자신의 책에 실었다.

그러나 책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건 그가 진료과정에서 겪은 숱한 사례들이다. ‘얌체 아주머니’나 ‘조용해진 호랑이 할아버지’ 등이 그 예다. 한때 남을 돕기 좋아하던 아주머니가 얌체로 돌변하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데다 생트집을 잡는 사람으로 변했다. 알고 보니 전두엽 치매에 걸려 사회성이 확 줄어든 것이었다. 쩌렁쩌렁하던 목소리로 곧잘 불호령을 내리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잃고 모든 것에 무관심해져 검사를 해보니 앞쪽뇌 혈관이 막혀 있었다. 앞쪽뇌가 손상돼 동기부여가 안 되고 모든 것에 의욕을 잃게 된 것이다.

나 교수는 “이런 사례를 남의 이야기라고 흘려 들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갑자기 멍해지는 일이 잦아지거나 판단이 흐려지고 결정을 내리는 게 어렵다면 앞쪽뇌의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갑자기 ‘욱’할 때가 잦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술을 마시는 건 앞쪽뇌에 직격탄을 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술을 만성적으로 마시는 분들의 뇌를 촬영해보면 유독 앞쪽뇌가 헐렁해져 있어요. 특히 폭탄주를 연거푸 마시는 건 뇌를 헐거워지게 하는 지름길이지요. 반면, 항상 변화를 주도하고 자기계발에 열심인 CEO의 뇌는 앞쪽뇌 부분이 유난히 두껍습니다.”

이미 폭탄주로 뇌가 헐거워졌더라도 희망은 있다. “뇌세포는 파괴될 뿐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의식적인 훈련을 계속하면 뇌의 유연성이 길러진다는 게 최근 의학계의 발견입니다. 노력하면 앞쪽뇌 부분을 두껍게 할 수 있단 거지요. 이렇게 뇌세포를 저축하면 치매에 걸리는 속도도 늦출 수 있고, 치매에 걸리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유지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뒤쪽뇌를 쉬게 하고 명상 등을 하는 거지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서 자기 안에서 답을 찾으면서 앞쪽뇌를 훈련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뇌를 리셋(reset: 재시동) 하는 거죠.”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감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능동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하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TV를 끄고 책을 읽는 것이 방법이지요.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나 교수는 앞쪽형 인간일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완벽한 앞쪽형 인간이 못 됩니다. 계속 노력할 따름이지요. 노력하면 새순이 돋아나듯 뇌세포의 신경 다발이 두꺼워지고 길이가 길어집니다. 꾸준히 운동 하고 폭탄주를 멀리해보세요. 뇌가 헐거워지는 것보다 낫잖아요.”

전수진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