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에 혼자 사는 김모(75) 할머니는 서울에 사는 아들 A씨에게 "어지럽고 정신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A씨는 작년 8월쯤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진단 결과 할머니의 어지럼증은 평소 당뇨병 증세로 하루 두 번씩 먹어야 하는 약을 하루에 4~5차례나 먹은 데서 온 후유증인 것으로 의심됐다. 치매 증상인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혼자 산다. 서울에서 어렵게 사는 아들 부부가 함께 살기를 꺼리는 데다 요양시설에 낼 돈(월 40만~50만원)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전국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 10명 중 4명이 혼자 살고 있다는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양동원 교수팀의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치매 노인의 실상을 드러낸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이 조사 결과를 현재 치매 노인 환자 수에 대입하면 전국적으로 최소한 10만명 이상의 치매 노인이 정부나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 노인요양보험 혜택을 보는 치매 환자는 의료계가 추정하는 전체 치매 환자(58만명) 4명 중 1명꼴인 15만명이다. 나머지 43만명의 치매 노인 가운데 상당 부분이 독거노인일 가능성이 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치매 환자가 노인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까다로운 판정 기준 때문이다. 치매 판정은 대소변 못 가리기·폭언·환청 등 20여개다. 이런 판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지금껏 치매 판정 신청자 17만명 중 2만4000명가량이 치매 환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치매 등급 판정을 받았더라도 가족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요양시설 이용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1년간 진료비(건강보험 적용분)가 개인 소득에 따라 200만~400만원이 넘게 나오면 그 이상의 금액은 나중에 모두 환불해주는 것처럼 요양보험에도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장 경미한 등급인 3등급을 받은 경우도 집에서 방문요양보호사가 돌봐주는 시간이 적어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치매 노인이 방문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시간은 1주일에 5일 동안 하루 4시간씩에 불과하다.

강원도 화천의 간동면 한 마을에서 혼자 사는 이모(88)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혼자서는 밥을 전혀 짓지 못한다. 전기밥솥의 코드를 제대로 꽂지도 못하고, 생쌀을 그대로 전기밥솥에 넣는 일도 있다. 보건소에서 매일 아침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치매 약을 먹도록 일러주지만, 그래도 종종 약 먹는 것을 잊고 지내곤 한다. "약 드세요"라는 말을 들어도 순간적으로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할머니는 방문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고 있다. 2010년 건강보험공단에서 3등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억력 등은 나쁘지만 신체에 특별한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3등급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은 "노인요양보호사가 할머니 집으로 방문해 밥짓기부터 빨래 등 가사일을 돌봐준다"면서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는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양동원 교수는 "혼자 살면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우울증 등에 시달리면 가족들이 돌보지 못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며 "독거 노인들에 대한 정부의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10/2013011000252.html,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