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09.02.03 15:31:19

치매노인들의 놀이터 `일산 해븐리병원`

해븐리병원(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증산동)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고마워" "예쁘다" "사랑해"라는 말이 귀에 자주 들어온다.

부자연스럽게 몸을 가누는 노인들도 의료진을 보면 양팔을 벌리고 다가와 포옹하며 인사를 전한다.

`heaven 理(해븐리)`. 말 그대로 하늘 마을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생활하며 치료받을 수 있는 뇌신경계전문 재활병원이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에서 수련하고 서울시립서북병원 신경과장을 역임한 이은아 원장은 치매 노인들에게 천국의 놀이터 같은 병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지난해 8월 9일 해븐리병원의 문을 열었다.

요즘 같은 경기불황에는 병원 개원에 부담을 갖게 마련이지만 이 원장에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울시립서북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치매전문병원의 확장을 도맡아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치매치료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기간에 수많은 치매환자와 대면하면서 그동안 학문적으로 느꼈던 치매라는 질병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걸 목표를 찾게 됐다.

해븐리병원을 둘러보면 이 원장이 치매라는 질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원장은 "치매환자들처럼 귀엽고 순수한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들이 맘껏 돌아다니고 소리치고 그럼에도 대우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어요"라며 "소리 지르면 재우고 격리수용하는 병원에서 고통 받는 치매환자들이 더는 없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해븐리병원은 전문병원과 요양센터가 한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전문병원에는 119병상, 요양센터에는 60병상이 마련돼 있다. 신경과,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 30여 명과 직원 30명이 상주하며 입원환자들을 실시간으로 돌본다.

건물 옥상에는 치매 환자에게 안전한 형태의 정원을 꾸며 언제든지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환자의 마음에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 소망병동, 행복병동, 사랑병동이라고 이름붙인 테마병동을 만들어 핑크색, 오렌지색, 연두색의 산뜻한 분위기로 꾸며놓았다.

이 원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병동을 돌며 환자들과 만난다. 병상에 누워만 있는 환자에게는 "우리 병원 침대 값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싸다"며 "누워 있을수록 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장난스럽게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면 누워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화들짝 놀라서 침대에서 내려와 병동을 걷거나 옥상정원을 산책한다.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모여들면서 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80%, 요양센터에는 40여 명의 대기자가 줄을 섰다. 이런 와중에서도 검사 비용이 부족한 입원환자가 있으면 병원비를 절감해서라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은아 원장은 치매환자에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치매환자들은 사람도 잊어버리고 기억도 잊어버린 채 그들만의 세계를 살아갈 뿐입니다"며 "해븐리병원 안에서 그들의 삶을 존중하면서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MK헬스 =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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