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머님 식탁에 앉으면 정말 가관이야, 개그가 따로 없어”

김성애 수필가  

2009/03/06 [15:24] ⓒ 브레이크뉴스

주변을 편하게 하는 보물 1호감인 친구가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만나서 귀한 시간을 함께 할 친구이다. 그녀는 젊은 대학시절보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귀하게 보인다.  그녀는 상대방의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재미있어 무척 깔깔거리고, 슬픈 이야기에는 함께 슬퍼한다. 정말로 그녀는 상대방의 관심거리를 함께 바라보며 따스하게 품어준다. 다른 친구들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편안한 따스함으로 자신들도 밝아진다고 한다.

한강에 빠져 죽는다고…

그녀는 파출부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15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하버드 석사 출신인 그녀는 교수직이 따분하다며 그만두고, 시어머니와 함께 그녀 자신처럼 편안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어제 저녁 화장실에서 어머님이 똥칠하기 직전에 내가 잽싸게 처리했어. 할수록 요령도 생기고 냄새도 그리 심하지 않아.” 라는 그녀의 말에 근심스럽게 쳐다보면, “그래도 몇 년 전에 나랑 싸우고 한강에 빠져 죽는다고 나갔을 때보다 지금이 편해. 설마 했더니……. 그때는 정말로 한강에 빠졌나봐. 지나가던 학생 등에 물을 뚝뚝 흘리면서 업혀 왔는데…….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지금은 혼자 밖에 나가시지 못하니깐 훨씬 편해.” 라며 편안하게 건네는 이 여인네의 말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 김성애  수필가   ©브레이크뉴스 

예전엔 기세 등등하셨던 시어머님을 지금은 대책 없이 사고치는 어린아이 보살피듯 어루만지고 있다.  그녀 집에 가면 두 여인들은 시나리오가 매번 바꾼 소꿉놀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머님, 애 아범이 곧 오는데…….” 말하면서 부엌 냉장고를 여시는 시어머니에게 “네~ 아범 오면 금방 밥 먹게 해 놨으니 이리 오세요.” 하면서 그녀는 시어머니를 부엌에서 사고치지 않도록 소파에 앉힌다.  시어머니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단정하게 매만져주며 시어머님의 소꿉놀이에 장단을 맞춘다.

“오늘은 나를 시어머니로 여겨 하루 종일 대접 받고 있어.(깔깔 웃는다.) 어제는 본인이 시집갈 준비로 바쁜 처녀로 돌아가서 어찌나 짐을 챙기던지…….” 하며 다양한 치매 소꿉놀이에 그녀는 아무 조건 없이 상대역할을 한다. 

“어머님은 내가 밖에 나가면 그때를 어찌 아는지, 내 방까지 와서 화장대 위의 화장품을 마구 얼굴에다 머리에다 발라. 들어와서 보면 머리에 허연 영양크림 뭉쳐있고…….어휴~ 아껴서 조금씩 쓰던 건데…….” 말하면서 웃는 그녀다.

모든 이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싫어하는 힘겨운 상황을 이 여인네는 ‘이왕 할 바에는…… 편안하게 해드려야지!’ 라며 덕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산다. 남편이 막내인데 내가 왜 어머님을 모셔야 되는지 친구한테 불평도 한 만한데, ‘어머님이 딸집에서도 불안해서 하루 저녁을 못 넘기시고, 나를 편안하게 여기니까……’ 하면서 치매 시어머니를 도닥거리며 산다.

미국에 계시는 그녀의 친정어머님 역시 치매를 앓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두 아들과 딸이 치매 친정어머님을 모실 처지가 안 된다며, 어쩌면 두 분의 치매어머님들을 한집에 모셔야 될지도 모른다는 어마어마한 말을 하면서 그녀는 태연히 웃는다. 인간의 본성이 워낙 착해서 그런지 일부로 복을 쌓으려고 그런지…….

“개그가 따로 없어”

작년 봄, 미국에서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 한 그녀의 친정 부모님을 뵈려 그녀 집에 갔다. “미국에서 오신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매번 식사 때마다 두 어머님 식탁에 앉으면 정말 가관이야. 서로 처음 만난 듯이 인사하고 서로 딴말하고 있어……. 개그가 따로 없어.” 말하면서 깔깔 웃는다.

그녀는 친구 좋다며 “앞으로 우린 벽에 똥칠할 때 까지 살 거니까 맛있는 것 많이 먹어야 돼.  더 늙으면 맛있는 것도 없다더라.” 식탁에 있는 맛난 반찬을 내 밥 위로 자꾸자꾸 올려놓는다. 오늘도 따스한 정을 나누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삶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나와 함께 할머니가 될 그녀가 있어 참 행복하다. sungae.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