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2월 4일. 크림반도의 얄타(Yalta)에서 연합국 지도자들이 나치 독일을 패퇴시키고 그 후의 점령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회담을 열었다. 당시 62세였던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71),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66)이 회담의 주인공이었다.

역사를 바꾼 이 세 사람 모두 당시 매우 심한 뇌혈관 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이 회담에서 평소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것이 질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처칠은 회담 이전에도 뇌졸중 병력이 있었고, 훗날 결국 4번째 뇌졸중으로 죽음을 맞았다. 당시의 증상과 주치의 소견 등을 종합해볼 때, 그는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뇌혈관 동맥경화 등으로 뇌 혈류가 감소해 생기는 치매를 말한다.

루스벨트 역시 고도의 고혈압이 계속돼 왔고, 심장 기능 이상이 자주 있었다. 그는 얄타 회담 후 그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당시 점차 심해지는 인지 기능 장애를 보이고 있었고 혈관성 치매가 의심된다.

스탈린도 뇌졸중을 앓았고 후에 심각한 뇌출혈을 겪게 되지만, 얄타 회담 시기에는 인지기능 장애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역사의 방향을 결정할 지도자들의 인지기능이 정상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치매는 100여 가지 질환에 의해 나타난다. 혈관성 치매는 노인성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치매의 원인 질환이다. 혈관성 치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혈관성 치매는 일반적인 치매와 달리 기억 장애가 특징적인 증상은 아니다. 판단력과 집중력이 감소하고 성격 변화가 일어난다. 평소보다 참을성이 없어지고 고집스러워지며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혈관성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보다 발병 나이가 어리고, 나름 사회적 지위가 높고 중요한 자리에 있는 시기에 서서히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 장애가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치매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운동 부족, 심장 질환 등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위험 인자를 조절하면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뇌졸중 후에도 치료를 지속적으로 하면 예방할 수 있다. 얄타 회담 사진 속에서 처칠은 시가를, 루스벨트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고혈압과 더불어 흡연은 혈관성 치매의 가장 중요한 위험 인자라는 것을 이 역사적 사진이 보여준다.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16/2014121600365.html,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