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과 정우성이 주연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감독·이재한)는 치매를 다뤘다. 수진 역의 손예진이 점점 기억력을 잃어가는 설정이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치매에 대한 인지도도 높였다고 본다.

영화 속 손예진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기억장애를 보인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전체 치매의 60%를 차지한다. 이 병의 첫 증상이자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 기억장애다. 이런 이유로 기억장애만이 치매의 첫 증상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기억장애 없이 언어장애·시각장애·행동장애로 나타나서 진행하는 알츠하이머병도 꽤 있다.

알츠하이머병 기억장애는 의학적으로 '최근 기억의 입력 실패'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발병 전에 있었던 과거 기억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해마(海馬)라는 뇌 부위는 새로운 내용이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알츠하이머병에서는 이 해마가 가장 먼저 손상된다. 따라서 알츠하이머병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기보다는 '내 머리 속의 잠금쇠'라고 표현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어울린다.

환자들은 새로운 기억이 뇌에 저장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전에 있었던 일, 어제 또는 수일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어렵다. 머릿속에 이런 내용이 들어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 본인은 절대 없었던 일로 생각한다. 이런 연유로 발병 초기에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반면 과거 기억은 나름 잘 유지하고 있다. 어제는 기억 못 해도 20~40년 전 일은 잘 기억한다.

새로운 기억이라도 감정이 동반됐거나 본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은 비교적 잘 기억한다. 치매가 심한 어르신들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간혹 환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환자가 기억 못 할 것으로 생각해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한 후에 환자의 증상이 갑자기 심해지는 경우를 본다.

알츠하이머병은 유전자 이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증상이 시작되고 빠르게 진행한다. 영화 속 손예진도 유전형 알츠하이머병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에서도 "자네 이름이 뭐지?" "사장님, 벌써 30번째입니다" 등 그녀의 아버지 기억력도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조기 발현형 알츠하이머병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 확인된 가장 젊은 환자는 33세였다.

영화에서 손예진은 정우성에게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나한테 스며들었어요. 나는 당신처럼 웃고, 당신처럼 울고, 당신 냄새를 풍겨요. 당신 손길은 그대로 내 육체에 새겨져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치매 증상이 아무리 심해도 배우자나 가족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남는다.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0/2015012000375.html,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