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서양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2)는 순수 이성 비판, 실천 이성 비판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노년기에 앓았던 치매 관련 증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칸트가 말년에 보였던 여러 증상은 친구이자 비서였던 바시안스키가 남긴 기록과 친구들이 전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칸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 일과가 항상 정확하게 같은 시각에 시작됐다. 매일 같은 경로만을 산책했고, 보폭도 일정하게 하여 같은 발걸음 수로 걸어야 직성이 풀렸다. 자기 통제가 철저했던 사람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자기가 사는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나 본 적도 없고, 매일 같은 음식을 먹었다. 이러한 행동으로 칸트에게 강박장애 진단을 붙일 수 있는가는 지금도 논란이다. 강박증상은 대뇌 신경 회로 장애와 연관 있고, 칸트가 오랫동안 두통으로 고생했던 점을 들어, 전두엽 뇌종양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한다.

칸트는 말년에 인지기능장애를 보이기 시작했고, 점차 심해져서 70세 경에는 뚜렷한 치매를 보였다. 현저한 기억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었고, 이상행동과 심리증상이 나타났다.

칸트는 인지기능장애의 심한 기복, 특별한 이유 없이 자꾸 넘어지는 증상, 환각, 그리고 렘수면(자는 동안 일부 각성이 일어나는 시간) 행동장애를 보였는데, 이로 미루어 그의 치매 증상은 '레비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에 가장 적합하다.

'레비 치매'가 현재의 진단 기준을 갖게 된 것은 불과 20년 이내 일이다. 새롭게 알려진 질환이지만, 알츠하이머병, 혈관성치매 다음으로 흔한 치매 원인 질환이다. 국내에도 많은 환자가 있으나, 증상이 매우 다양해서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는 사례가 많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칸트는 70대 초반 나이에 기억장애와 시간 및 공간의 혼동을 보였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과수면증을 보였다. 촛불 아래서 책을 읽다가 갑작스럽게 잠에 빠지면서 화재 사고도 수차례 있었고, 본인도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밤에는 매우 생생한 악몽에 시달렸고, 가끔은 그 상태에서 깨어나서 흥분했다.

'레비 치매'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인 '환시'도 있었다. 만일 어떤 환자가 실제로 없는 사람이 보인다고 하고, 그 사람이 몇 살쯤 되어 보이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면, 이 증상 하나만으로 '레비 치매'를 의심할 수 있다. 생생하고 입체적이며 색깔이 뚜렷한 환시는 오직 이 질환에서만 보인다.

'사람은 우리 눈에 보이는(see) 것들을 자기 나름의 필터로 거르고,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 각색해서 본다(watch)'는 신경과학적 생각과 '사람은 외부의 것 자체를 알 수는 없고, 감각을 통해 들어온 것을 우리 마음의 형식으로 재창조한다'는 칸트의 사상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7/2015012700392.html,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