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작곡가 하이든(1732~1809)은 모차르트와 비교되는 음악 천재로 꼽힌다. 모차르트가 35세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천재라는 타이틀에 더 어울리는 일생을 살았다면, 하이든은 77세에 죽음을 맞아 당시로는 천수를 누렸다.

하이든은 66세에 종교 음악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작곡한 이후에 인지 기능 장애와 보행 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69세에 힘들게 오라토리오 '사계' 작곡을 끝내고, 점차 뇌 기능을 잃어 더 이상은 작곡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그는 걸음걸이가 이상해져 혼자서 걸을 수 없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우울증과 조금씩 심해지는 기억 장애, 심한 기분 변화, 배뇨 장애 등으로 고생했다.

하이든은 현재 진단 기준으로 겉질밑 혈관 치매를 앓은 것으로 보인다. 혈관 치매는 뇌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져 뇌 혈류 감소로 생기는 치매인데, 겉질밑 혈관 치매는 뇌 바깥쪽 겉질 안쪽에 생긴 혈관 치매를 말한다. 이 치매의 최종 진단은 뇌 MRI에서 특징적인 병변을 봐야 가능하지만, 신경과 전문의들은 하이든의 특징적인 증상으로 이 질환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일반적인 혈관 치매는 뇌졸중이나 뇌출혈 후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겉질밑 혈관 치매는 대부분 뇌졸중 병력 없이 서서히 시작돼 조금씩 진행한다. 이 때문에 노인성 알츠하이머병과 혼동되는 경우도 많다. 기억 장애나 인지 장애가 알츠하이머병에 비해 심하지 않다. 알츠하이머병이 기억 입력이 잘 안 되는 장애라면, 겉질밑 혈관 치매는 주로 회상이 잘 안 된다.

인지 기능 장애가 그렇게 심하지 않으면서 보행 장애, 심한 기분 변화, 배뇨 이상, 우울증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세한 병력과 신경학적 진찰로 구별할 수 있다. 특히 보행 장애가 특징적인데, 힘이 없어 못 걷는 것이 아니고,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걷는다. 마치 첫 돌이 지나고 아기들이 막 걷기 시작할 때와 같은 걸음을 보인다. 보폭이 짧아지고 다리가 바닥에서 잘 안 떨어지면서 양 발이 벌어지는 걸음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지 운동 능력은 잘 유지돼 양손이나 팔로 하는 작업은 거의 정상처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척추 질환이나 하지 관절 이상으로 오인한다.

겉질밑 혈관 치매는 매우 작은 뇌혈관들의 변화로 뇌의 백질, 겉질밑 부분 뇌 조직에 변성이 유발된 상태다. 이런 병변은 뇌 MRI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혼합돼 나타나기도 한다.

겉질밑 혈관 치매를 포함해 혈관 치매는 뇌혈관 동맥경화를 낮추고 혈류를 늘리는 예방적 치료와 고혈압, 당뇨병 등 위험 인자 조절로 발생을 줄일 수 있고, 병의 진행도 늦출 수 있다. 치매 증세가 있을 때 뇌 MRI 검사를 통해 혈관 치매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혈관 치매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 흔하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3/2015022304217.html,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