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룡 서울대 교수·가정의학

우리나라가 현재 남북으로 갈라진 이유에 치매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가른 결정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회담은 소련의 스탈린 원수, 영국의 처칠 총리,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경과 전문의인 미국의 제임스 툴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이 회담에 참여했던 세 사람 모두 치매를 앓아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판을 안겨준 치매가 요즘 또다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데, 국내 환자 발생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의 통계 발표를 보면, 작년 65세 이상 노인의 8.4%인 약 50만명이 치매이고, 이러한 증가세가 지속되면 20년 후엔 이의 2배인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치매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빠른 고령화 속도와 가장 관련이 크다. 치매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고령, 즉 나이이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이 짧은 나라일수록 치매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해 평균수명이 80세가 넘는 나라에 사회적 현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치매가 문제가 되는 의학적인 이유는 아직 완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치매는 치료한다기보다는 조절하는 병으로, 완치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나빠지는 속도를 더디게 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아무리 치료를 잘하더라도 결국은 치매 말기에 다다르게 되며, 어찌 보면 치매를 치료할수록 환자를 돌보아야 할 노력과 기간이 더 소요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질병에 비해 치매가 더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혼자만의 질병이 아닌, 가족을 힘들게 하고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치매가 진행될수록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이 동시에 떨어지게 되고, 결국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러다 보니 단순히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몰상식적인 행동으로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평범한 한 가정의 구성원 중 치매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상당수의 가족이 환자에게 정성을 쏟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가족 간의 갈등도 발생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치매의 날’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치매의 날을 정하고 치매환자의 발견과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의학계는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고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정부와 여러 기관에서 제공하는 연구비와 정책은 이러한 시기를 앞당길 것이며, 치매도 완치되는 날이 올 것이다.

최근의 연구 성과를 보면 언젠가는 치매도 완치되는 날이 오겠지만 불행히도 그 시기가 코앞에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치매환자의 발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치매도 위암이나 관절염처럼 뇌라는 기관의 신체적 이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병이라는 사실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사회는 질병의 치료를 환자와 그 가족에게 전담시킬 것이 아니라, 제도로써 도와주어 비록 치매 환자가 발생해도 한 가족의 행복을 앗아가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국가에서 전면적으로 시작한 ‘장기요양보험’이나 각 지역 자치단체에서 주도하는 ‘치매 예방프로그램’, 내년부터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확대될 ‘치매 조기검진사업’은 이러한 사회제도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치매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완치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진정 ‘치매환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비룡 서울대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