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80세 노모의 큰딸이 40대 후반이 되자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50대 중반의 큰아들은 이미 치매를 앓고 있다. 50세인 작은아들에게는 인지 장애가 보이기 시작한다. 곧 치매가 발생할 징조다. 한 가족 내에 이런 치매 환자가 줄줄이 나온다면 비극이 분명하다. 하지만 남미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지역 야루말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곳은 가족 간에 알츠하이머 치매가 대물림되는 마을로 꼽힌다. 대대로 외부와 교류가 없었던 주민 5000여명에게는 치매 유전자 보유 가계(家系)가 형성돼 있다. 이들은 45세를 전후해 치매가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은 치매가 유전되느냐고 묻는다. 자주 받는 질문이지만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야루말 마을처럼 치매 유전자가 확실히 관여하는 경우라면 유전된다고 할 수 있다. 치매 환자의 약 5%는 그런 치매 유전자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치매는 100여 가지 질환으로 유발되는 증상일 뿐, 그 원인이 되는 질환에 따라 유전될 가능성과 대물림되는 양상이 모두 다르다. 그 중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6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지는 유전자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포지단백 유전자다. 이 유전자형 중 특정 타입을 가진 사람이 꼭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병원에서 필요한 경우 이런 유전자형 검사를 한다.

야루말 지역 주민처럼 확실한 치매 발병 유전자를 갖고 있으나 아직 증상이 없는 사람들을 무증상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부른다. 이들을 대상으로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시점을 늦추거나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간혹 치매 환자 본인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치매 질병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주로 65세 이전에 인지 기능 저하의 원인으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경우다. 65세 이후에 발생한 노인성 알츠하이머병인 경우라도 부모 형제 중에 같은 증상을 보였던 환자가 여러 명 있다면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50세 이전에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한 경우 30% 정도의 환자에게서 유전자 이상이 발견된다. 발병 연령이 높을수록 질병 유전자 이상이 발견될 가능성은 작아진다.

따라서 65세 이전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일단 환자의 혈액을 이용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게 좋다. 그 결과에 따라 가족들의 유전자 검사도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 알츠하이머병을 완치하거나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최근 의학 발달로 증상을 완화하고 증상 발현을 늦출 수 있는 다각적인 접근 방법이 있으니 알츠하이머병 발생 가능성이 확실히 큰 사람들은 미리 대비해야 한다.

 

 

 

 

기사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11/2015051103829.html,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