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 으뜸글>

우리 할머니가 치매라고요?

백지윤(서울 증산 6)

"할머니, 나 왔어. 찬물 좀 줘."

현관문을 열며 뛰어들어 갔다. 집 안이 조용했다. 늘 웃으며 가방을 받아주는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참,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시지.'

할머니 방 앞에 서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계셨다.

우리 엄마는 중학교 선생님이시다. 엄마가 일을 하시는 탓에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 우리 언니와 나는 할머니의 손길을 받으면서 자랐다. 다른 아이들은 외출을 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를 찾지만, 나는 할머니를 찾곤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 대부분 1학년 아이들은 예쁘게 꾸민 엄마와 손을 잡고 등교하였지만, 나는 하얀 머리와 굽은 허리를 지니신 할머니와 억지로 떼어놓으려고 해도 안 떨어질 정도로 손을 꽉 쥐고 학교에 가곤 했다.

뒤에 서 있는 친구들이,

"엄마, 저 애는 왜 할머니랑 오는 거야? 엄마 없어?"

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래도 난 항상 싱글벙글이었다. 당연히 할머니와 다니는 걸로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5 교시라는 빠듯하고 긴 시간 동안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늘 내 가방을 받아주고 간식을 주시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킁킁!'

부엌에서 탄내가 났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둔 주전자의 물이 넘쳐서 주방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드르렁'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이상하게 할머니의 건망증이 더 심해지신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가 아무리 병원에 가보자고 해도 할머니는 괜찮다면서, 통 가려고 하시질 않았다.

나는 건망증이 큰 병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대전에 사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뒤, 고모는 손수건을 움켜쥐며 울고 계셨고 엄마와 아빠도 흐느끼고 있었다.

"어머니가 치매래요. 폭력적인 치매는 아니고, 욕을 좀 많이 하실 수도 있대. 워낙 험하게 사셔서……." 고모가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치매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뒤,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왔다. 늘 아침 준비를 하고 집 안을 깨끗이 정리하시던 할머니는 대소변도 못 가리고, 계속 먹을 것만 찾았다. 먹고 또 먹으셨다. 누군가가 집에서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엄마는 학교로, 아빠는 회사로 출근을 하셔야 하고, 또 언니와 나는 학교와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시장에서 생선 장사도 하며 온갖 고생 다 하신 우리 할머니. 언니와 내가 태어나서부터는 엄마 대신 우리를 길러 주신 할머니. 내게는 엄마보다는 할머니라는 단어가 더 친숙했는데…….

우리 집과 큰 아빠댁, 큰 고모댁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큰 아빠는 할머니에게 여행을 가자고 하시면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신 것이다. 할머니가 혼자 집에 계시면 더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가족은 요양원으로 떠나시는 할머니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다.

어느덧,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신 지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아빠는 어머니를 보냈다는 쓸쓸한 마음 때문인지 우리와 등을 돌리고 앉아 계시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면서 속상해 하신다.

나는 꿈 속에서 가끔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우리 집 대문 앞을 서성이며 나와 점점 멀어져 가고만 있다. 할머니의 꿈을 꾼 날은 일어나 할머니 방으로 가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할머니의 물건들이 주인 없는 방을 지키고 있다.

나에게는 친구 같고, 엄마 같았던 할머니였는데, 치매라는 병이 할머니를 빼앗아 갔다. 물론 치매는 완치될 수 없는 병이지만, 나와 우리 가족의 소망처럼 할머니가 집에 와서 생활했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가까이에서 그 인자한 미소를 보고 싶다.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나를 꼭 끌어 안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아빠라는 걸 알 수 있다. 깔깔한 수염이 내 볼에 닿는다. 아빠의 눈이 촉촉히 젖어 있다. 굽어 있는 아빠의 등이 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 빨리 돌아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