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에 지쳐서 아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지난 5일 밤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오가와(小川)의 한 주택. 치매를 앓고 있던 부인(77)을 흉기로 살해한 구니사키 세이치(國崎誠一·83)가 스스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알렸다. 경찰은 구니사키를 상대로 수사를 하려 했지만 구니사키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는 데 지쳤다”는 이야기만 하고 이후 진행된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유치장에서 생활하던 구니사키는 물과 녹차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열흘 넘게 끼니를 거부하던 그는 결국 몸이 쇠약해져 17일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식사를 거부했고, 23일 오후 9시50분쯤 숨을 거뒀다.

구니사키의 부인은 2~3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다. 이웃 주민들은 그가 혼자서 아내를 돌봤고, 치매를 앓는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다니는 등 사이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에 “내 몸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내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곤 했다고 25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구니사키는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20년 전쯤 오가와로 이사를 왔으며, 그 자신도 암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이웃 여성은 “힘들다, 도와달라고 주변에 호소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NHK방송에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노인이 노인을 보살펴야 하는 고령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인개호(요양보호) 시스템의 허점도 도마에 올랐다. 자식의 도움 없이 혼자 사는 고령자는 지역포괄지원센터 등의 기구에서 생활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게 돼 있으나, 고령이어도 부부가 동거하면 관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가와 지역사회복지협의회는 구니사키 부부에게 공공 요양보호 서비스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연락을 취했으나 구니사키가 거절했다고 밝혔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간병 피로로 가족을 살해했거나 살해하려고 시도한 사건은 44건이었다. 사이타마대학 사회복지 전문가 나가토모 유우(長友祐三) 교수는 “고령자 세대, ‘노노(老老) 간병’ 부부 가정을 지원할 구조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52205235&code=970203,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