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지난 8월 6일 오후 2시 강원도 고성군. 노약자는 외출과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경고 방송이 나올 정도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김모(75ㆍ여)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걸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땀을 뻘뻘 흘리던 김씨는 길을 잃고 헤매는 듯 보였지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민이 신고해 경찰관이 출동했고 그제야 김씨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가족과 떨어져 길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치매노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4월 서울 도봉구에 사는 A(74)씨는 우울한 마음에 무작정 버스를 타고 의정부와 포천 경계인 축석검문소 인근에 내린 후 실종됐다. 경찰은 인력 120여 명과 수색견을 동원해 5일간 도봉구와 의정부 일대를 뒤져 축석검문소 인근의 한 등산로에서 기운을 잃고 앉아 있던 A씨를 발견했다.

치매와 뇌경색 등을 앓고 있던 A씨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는 기억이 있었는데, 이후 기억을 잃고 산속을 헤맨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해 10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는 남편과 등산을 하던 B(71ㆍ여)씨가 실종됐다. 남편에게 "조금만 쉬었다 가겠으니 먼저 산에 오르라"고 했던 B씨는 노령에 가벼운 치매 증상으로 순간 길을 잃었다.

산속을 헤매던 B씨는 나흘간 사람이 살지 않는 움막 등에서 생활하다 극적으로 발견됐다. 산 아래가 바로 도심이었지만, 치매 증상으로 '조난'생활을 한 것이다.

치매 노인.[연합뉴스TV 캡처]

이처럼 최근 노령화로 치매 환자가 증가하면서 치매 환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늘고 있다.

2012년 공개된 치매 유병률 조사 결과를 보면 2008년∼2012년 노인 인구는 17.4% 늘어난 반면 치매 노인은 26.8%나 급증했다. 2012년 기준 전체 노인인구의 9.18%가 치매에 걸렸다.

치매 실종 건수도 증가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실종된 치매 환자 수는 2012년 7천650명, 2013년 7천983명, 2014년 8천207명, 2015년 9천46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올해는 7월까지 5천6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치매 실종은 치매의 대표적 증상인 '배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배회는 치매 환자가 인지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불안함, 답답함 등을 느껴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 증상이다. 요양원 등 보호 시설로 옮겨진 치매 환자에게 많이 발생하지만, 수십 년 동안 생활한 자기 집에서도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닌 것 같다"며 나가려 하는 경우도 있다.

치매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 정상 생활을 하며 평소처럼 길을 걷던 환자도 순간 인지 능력이 떨어지며 길을 잃는 경우도 많다.

치매 실종이 특히 위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종 시점과 실종 후 행적 등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집이나 요양 시설 등에서 잘 보호받던 환자들도 보호자가 잠깐 방심한 사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간다. 어디로 향하는지 가족이나 보호자는 물론 본인조차 알지 못한다.

경찰 관계자는 1일 "치매 환자가 실종되면 행선지를 예측하기 힘들다"며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실종 지점부터 뒤지는 방법밖에 없는데 제보가 없으면 며칠 씩 소요돼 다른 업무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노령인 치매 환자는 실종 시 저체온증이나 영양실조로 사망할 위험도 크다. 실제 지난 19일 전북 김제시에서는 요양원에서 실종됐던 90세 치매환자가 결국 인근 농수로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정부는 문제 해결책으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원하는 치매환자가 없어졌을 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배회감지기와 인식표를 보급한다.

치매 노인이 배회감지기를 소지하고 있으면 보호자가 언제든지 휴대전화로 치매 노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사전에 지정된 구역을 이탈하면 보호자의 휴대전화로 알림 문자를 보낸다.

인식표는 치매 노인의 고유코드가 적힌 의류 부착물이다. 치매 실종 환자는 발견돼도 보호자 연락처, 이름 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유코드를 조회하면 이런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배회감지기[연합뉴스 DB]

경찰 역시 치매 노인의 지문을 등록해 실종 시 얼굴, 사진, 신체적 특이사항 보호자 연락처 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사전 등록제를 운영중이다.

하지만, 활용도는 아직 부족하다. 치매 증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숨기려는 인식 때문이다.

시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배회감지가 보급률은 1∼3%에 불과하고, 경찰 지문 등록률도 지난해 기준 3%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 관계자는 "배회감지기가 있으면 치매 실종으로 인한 사망 사고를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며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병인 만큼 소중한 가족과 생이별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본인이나 가족의 치매 증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부의 정책을 활용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사원문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31/0200000000AKR20160831163700060.HTML?input=1195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