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세상읽기] 연극 ‘오거리 사진관’에서 배우기

“여보 이제 나와 갑시다.”
“싫어유, 더 있다 갈래유.”
“얼마나 더 미안하려고 그래?”
“그래요. 가기 싫지만 이불에 오줌 지리고… 미안하지 않기 위해 가야겠네요.”

연극 ‘오거리 사진관’(한윤섭 작.연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부부의 대화내용이다.

오거리 사진관 배역, 출연진

남편(장기용 분)은 치매를 앓는 것이 미안해 1년 전, 잠깐 정신이 돌아왔을 때 ‘오거리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이 갑자기 떠난 뒤 충격으로 아내(이용녀 분)도 치매를 앓기 시작한다.

남편의 첫 제사를 며칠 앞두고 아내는 꿈을 꾼다. 죽은 남편이 나타나서 “며칠 뒤 집에 들를 테니 오거리에 있는 연주보살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말을 믿을 수 없지만, 게다가 아내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권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너무 생생해서 긴가민가한다.

남편 제삿날, 제사 지내기 위해(크리스천 집안이라 제사가 아니라 추모기도회) 모인 두 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에게 꿈 얘기를 한다. 하지만 아들, 딸들은 엄마 얘기를 전혀 믿지 않는다. 사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하지만 엄마는 남편의 말을 진짜로 믿었다. 2주 뒤 엄마의 생일날. 생일상이 차려지고 생일 떡 케이크에 불을 붙이자 엄마는 불을 끄며 올 사람이 있다며 기다리자고 한다. 누가 오냐고 묻자, 아부지가 온다고 기별을 했단다. 엄마의 치매 상태가 심각하다고 걱정하는 아들, 딸들.

하지만 잠시 뒤 초인종이 울리고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살아계실 때 그 복장, 그 모습으로…. 아연실색한 아들 딸 며느리.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셨으니 거액의 생명보험금 받은 것이 탄로날까봐 걱정하며, 빨리 저녁이 되어 아버지가 다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런 아들 딸 며느리 태도에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엄마는 섭섭하기만 하다.

아무리 연극이지만 죽은 사람이 1년 만에 살아 돌아오는 일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불편한 진실’은 연극이 진행되면서 차츰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이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의 꿈과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 엄마는 꿈에 남편이 오거리에 있는 연주보살을 찾아가라고 말한 것을 믿고, 오거리 사진관에 가서 남편이 죽기 직전에 찍은 영정사진을 자신의 생일날 아침 집으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영정을 받은 치매 엄마는 남편이 실제로 살아온 것으로 믿고….

치매 증상이 심각해진 엄마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그날 오거리 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을 찍었다. 사진사는 1년 전에 치매 앓는 할아버지가 영정사진을 찍은 뒤 아직도 찾아가지 않은 사실을 기억해 내고, 그 사진을 보여주자 엄마는 남편이 살아온 것으로 믿었다. 엄마의 생일날 아침에 벌어진 ‘돌아가신 아버지가 1년 만에 살아 돌아온 해외토픽성 사건’의 진실은 이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맨 위에서 나눈 부부의 대화다.

치매. 알츠하이머라고 불리는 이 병은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기억이 사라지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고, 아들, 딸들도 몰라본다. 아직까지도 ‘치매 앓는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불효’라는 의식이 남아 있어, 자녀들은 치매 부모를 집에 모시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치매는 더 이상 쉬쉬할 병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큰 병이다. 연극 ‘오거리 사진관’을 본 관객들은 눈이 벌게지도록 눈물을 쏟는다. 치매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대학로 SH아트홀에서 연극 ‘오거리 사진관’을 보고 그 먹먹함을 시로 써 봤다. 치매를 앓다 1년 전에 자살한 남편(장기용 역)을 그리워하며 치매를 앓는 할머니(이용녀 역), 엄마와 아부지의 치매를 지긋지긋해 하는 아들(류창우 민준호) 딸(박리디아) 며느리(김순이)의 ‘불편한 진실’을 진하게 느낀다. 정상급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력도 일품이다.

*오거리 사진관*

훌쩍 훌쩍 훌~쩍…
왼쪽 오른쪽
앞 편 뒤편
모두
손수건 꺼내든다

오거리 연주사진관
일 년 전
치매로 돌아간 남편
영정 사진
쓰다듬으며
살아 돌아왔다
되뇌는
엄마를 보며,

잠깐
정신 돌아왔을 때
정신 줄 단단히 잡고
문득
찍은
영정사진

이불에 오줌 지리고
외출하면 집 찾지 못하고
딸마저
색시 누구냐?
고 하는
미안한 병

기억 멀어지고
돈벌이 코앞이고
살아 돌아온 아부지가
귀찮고
무섭고

아들 딸 며느리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길 떠나자
권하고 따르는
부창부수(夫唱婦隨)

삶과 죽음
탐욕과 치매
너머
돌아가는 오거리
연주사진관은
울음바다
된다

영정사진
남기고…

기사원문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6083111245273028&outlink=1, 머니투데이